[스브수다] 최홍일, '결백' 결말에 고개 끄덕인 이유

작성 : 2020-07-08 10:5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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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브수다] 최홍일, '결백' 결말에 고개 끄덕인 이유
최홍일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좋지 않은 상황에 개봉을 한지라 걱정을 많이 했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좋아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무엇보다 영화를 본 관객들이 호평해주셔서 배우와 제작진의 노력이 보상받은 기분입니다."

배우 최홍일은 '결백'을 향한 관객들의 성원에 고마움을 전하면서 인터뷰를 시작했다. '결백'은 코로나19 여파로 개봉을 두 차례나 연기한 끝에 지난달 10일 개봉했다. 지금까지 모은 관객 수는 81만 명. 여기에 수치화할 수 없는 관객의 호평까지 더해졌다.

영화의 포문을 여는 상갓집 롱테이크 장면에서 최홍일은 영정 사진으로 등장한다. 그가 연기한 안태수는 아내인 화자(배종옥)와 의붓딸인 정인(신혜선)에겐 애증의 존재. 그는 삶의 크고 작은 부침을 겪으며 쓸쓸히 죽어갔다. 하지만 안태수는 영화의 시작이고, 끝 역할을 한다.

상갓집에 모인 동네 사람들이 막걸리를 마시다 하나 둘 쓰러지기 시작한다. 용의자로는 안태수의 부인인 화자(배종옥)가 지목된다.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일급 변호사로 성공한 정인 엄마의 변호를 위해 10여 년 만에 고향으로 내려온다. 안태수의 죽음은 흩어졌던 가족을 다시 모이게끔 했다.

결백

◆ "태수는 정인에게 고마워할 것 같다."

'결백'의 엔딩은 인정적 측면에서는 고개를 끄덕이게 하지만 윤리적 측면에서는 물음표를 남겼다. 정인은 엄마인 화자의 무죄를 끌어내기 위한 어떤 선택을 했고, 이는 원했던 결과로 이어진다. 하지만 변호사라는 직업의 윤리적 측면에서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다. 이 과정에는 세상을 떠난 안태수의 존재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안태수를 연기한 최홍일은 이 결과를 영화로 확인했다. 그는 결말을 어떻게 바라봤을까.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 싶었어요. 태수는 정인에게 고맙다고 생각할 것 같아요. 자신이 의도한 건 아니겠지만 뭔가 하나는 했으니까요. 이 사람은 살면서 타인에게 뭔가를 제대로 해준 게 없어요. 과정이 어찌 됐건 사후에라도 자신이 어떤 결과를 이끌어내는데 기여를 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결백

최홍일은 안태수라는 인물을 어떻게 해석했을까.

"엄석대('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속 독재자 캐릭터) 같은 캐릭터라고 생각했어요. 콤플렉스가 많은 사람이죠. 완력이 세면서 알량한 기질도 있는 사람이라 어려서부터 마을의 동년배를 휘어잡고 다녔겠죠. 추인회(허준호)도 비슷한 성격이었겠지만 그는 디테일하고 안태수는 아니라는 차이가 있겠네요. 임춘우(김석훈)는 동네의 엄친아 같은 존재였을 거예요. 아마도 서울에서 학교를 졸업한 똑똑한 친구였을 것이고 친구들 사이에서도 자랑스러운 존재로 여겨졌을 거예요. 어느 날 여자(화자)를 데리고 왔는데 태수의 이상형이었던 거죠. 그러면서 '쟤는 어떻게 다 가지냐'라는 분노를 느끼기도 하고 욕심도 났겠죠."

최홍일은 안태수를 연기하면서 시나리오에 쓰여있지 않는 인물의 전사를 예상하고 행간의 의미를 찾는 작업이 재밌었다고 했다. 그는 "배우는 광부와 비슷한 속성이 있어요. 캐릭터를 파고 들어가는 과정을 거듭해요. 원석을 발견해내는 과정인데 그 작업을 잘 해내면 다이아몬드를 발견할 때가 있어요. 그때의 희열이랄까. '결백'도, 안태수도 그런 재미가 있는 캐릭터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화자를 향한 태수의 감정은 순수한 사랑은 아닐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는 "태수에게는 어떤 본능이자 욕망의 대상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 여자를 갖고 싶고, 춘우로부터 뺏고 싶다는 욕망 같은 것이었다고 본다. 심리학을 공부해본 적은 없지만 오히려 태수는 나약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본성을 숨기려고 폭력적으로 행동한 게 아닐까 싶더라"라고 자신만의 의견을 내놓았다.

결백

◆ "배우들 모두, 각자의 칼을 숨기고 있더라"

캐스팅 순서로만 따지면 최홍일은 마지막 단계에서 합류했다. 영화 '동주'를 인상적으로 본 조감독이 그를 추천했고 박상현 감독과의 미팅 끝에 캐스팅됐다.

안태수는 다소 전형적인 악역으로 보일 수 있는 인물이었다. 최홍일은 캐릭터를 뻔하게 그리고 싶지 않아 감독과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누며 캐릭터를 구축해나갔다.

"박상현 감독이 두 달 내에 9kg를 감량했으면 했어요. 젊은 시절까지 직접 연기하기도 하고, 극 중 병에 걸려서 죽는 설정이기도 하니까요. 무조건 안 먹는 수밖에 없었어요. 사람을 만나면 밥 먹고, 술 마실 일이 생기니까 다이어트 기간 동안은 사람을 안 만났어요. 혼자 산을 타고, 사우나 가서 땀 빼고, 촬영 전에는 단식하고... 극 중 배종옥 씨가 절 말리고 그걸 제가 뿌리치는 장면이 있는데 힘이 없어서 같이 쓰러질 정도로 살을 뺐어요."

최홍일이 그간 출연했던 영화만 해도 수 십 편이지만 '결백'의 현장은 남달랐다고 했다. 모든 배우들이 각자의 무기를 챙겨 와 촬영 전까지 꽁꽁 숨기고 있었고, 촬영이 들어가면 하나같이 예상치 못한 뛰어난 연기로 상대 배우들을 놀라게 했다고. 어떤 영화보다 열정이 넘쳤던 현장이었다고 회상했다.

결백

"연극배우 출신 배우들이 어느 현장보다 많았는데 하나 같이 대본에 없는 플러스알파를 준비해왔더라고요. 충청도 사투리를 연마해야 해서 한 도시의 전통 시장을 찾아간 적 있어요. 근데 거기에서 영화에 출연하는 동료를 여럿 만났어요. 서로 "여긴 웬일이야?"하고 놀라면서도 기분 좋아서 마냥 웃었던 기억이 나요. '저 사람 되게 열심히 한다. 나도 열심히 해야지' 이런 동기 부여가 됐거든요. 감독도 신인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준비를 단단히 해왔고요."

최홍일도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만들기 위해 인물 분석 노트를 써 내려갔다. '안태수는 어디서 태어났고, 부모님은 누구이고, 어떻게 살아왔고, 어떤 트라우마를 가졌길래 이런 인물이 됐을까'와 같은 물음표를 떠올렸고, 그 답을 하나씩 채워나갔다.

연기는 액션과 리액션의 합이다. 최홍일은 이번 영화를 찍으며 배우 간 앙상블의 힘을 느꼈다고 했다.

"태수가 딸 정인의 서울대학교 합격증을 찢어버리는 장면이 나와요. 촬영 전까지 과자를 먹으며 쉬고 있던 (신)혜선이가 슛이 들어가자마자 눈빛이 돌변하더니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더라고요. 촬영을 마치고 '혜선아, 넌 어떻게 그렇게 눈물을 잘 흘리니?'하고 물으니까 되레 '선배님이 방금 얼마나 무서웠는지 모르시죠?'라고 하더라고요. 인물이 쑥 들어오는 순간이란 게 이런 걸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배종옥의 열연에 대해서도 극찬했다. 그는 화자와 정인의 접견 신을 언급하며 "배종옥 씨가 혜선이를 껴안으며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라고 오열하는 장면을 보는데 가슴이 찢어지더라고요. 클로즈업 장면이 아닌데도 배종옥 씨의 손끝에 힘이 들어간 게 보였어요. 로버트 드니로가 '연기는 발끝에서 나온다'라고 했던 말이 떠오르더라고요. 배종옥 씨는 카메라에 잡히지 않는 저 손끝으로도 연기를 하는구나 하는 감탄이 들더라고요."라고 극찬했다.

결백

◆ 신연식 감독·백수찬 PD에 대한 신의

최홍일은 서울예대 연극과를 졸업한 후 30년 이상 대학로에서 연극 무대에 올랐다.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하기 시작한 건 40대 중반부터다. 그는 "와이프가 너무 고생을 많이 했다. 아무리 연극이 좋다지만 가장으로서, 아빠로서 책임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라고 활동 분야를 확장하게 된 계기를 밝혔다.

현재의 소속사와 계약하면서 계약서에 적은 특별한 조항이 있다. 신연식 감독과 백수찬 PD의 작품은 작품의 크기와 배역의 경중, 출연료 여부와 상관없이 무조건 출연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40대 중반에 '내가 계속 배우로 살 수 있을까'라는 회의가 왔던 적이 있었어요. 그때 두 사람이 영화와 드라마에 저를 믿고 기용해줬다. 누군가 나를 배우로 인정하는 사람이 있구나라는 희망을 줬어요. 신연식 감독은 아주 든든한 동반자예요. 그분이 연출한 '조류인간', '로마서 8:37'과 각본을 쓴 '동주'에 출연했어요. 그분은 절대 공치사도 하지 않아요. 백수찬 PD도 마찬가지다. 방송에 입문할 때 많은 도움을 주셨어요. 저를 늘 인정해주고 찾아주시죠. 그들에게 신의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하려고 해요."

30년 넘게 연기 한 우물을 팠지만 '연기엔 왕도란 없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그는 "지금도 어떻게 연기해야 할지 두려울 때가 있다. 감독은 나를 믿고 불러줬는데 내가 표현해낼 수 있는 폭은 좁은 것만 같다고 느낄 때가 있어요. 을 자주 봐요. 어떤 일은 10년 정도 하면 눈감고도 하는데 연기는 10년을 하고, 20년을 해도 숙달이 안 되는 느낌이에요. 하면 할수록 어려워요. 나도 한 번쯤은 잘해보고 싶은데... 스스로에게 '너 잘했다', '애썼어'라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요."

배우로서의 목표는 거창한 것이 아니다. 소박하지만 진실된 단 하나의 목표가 있다.

"10년 전에 아내와 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어요. 아내가 '당신은 꿈이 뭐야?'라고 묻더라고요. 유명한 배우가 되지도, 돈을 많이 벌지도 못해서 딸들에게 문신처럼 새겨진 가난의 그림자를 물려주더라도 애들이 컸을 때 아빠의 공연이나 연기를 보며 '우리 아빠 정말 열심히 사신 분이야. 됐어. 훌륭해'라는 생각을 하게끔 하고 싶다고 했어요. 능력은 부족할지언정 자신이 하는 일에 열심히 노력했던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라요."

그는 현장의 젊은 배우들에게 '열정'을 배운다고 했다. 작품에서 두 번이나 부자지간을 연기한 강하늘과 '결백'을 통해 처음으로 호흡을 맞춘 신혜선을 언급하며 "정말 열심히 하고 잘하는 후배들이죠. 그런 후배들을 보면 '난 뭐했지?' 싶어요. 내 30대는 막연하기만 했는데... 요즘 친구들은 연기도 잘하고 자기 관리도 철저하게 해요. 그 점이 존경스러워요. 후배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선배가 되기 위해 깨어있으려고 한다. 그리고 현장 갈 때도 그냥 가지 않고 조금이라도 공부하고 가려고 해요."라고 말했다.

최홍일은 촬영 현장이 그 어떤 놀이터보다 즐겁다고 했다.

"살다 보니까 모든 것에 감사하더라고요. 특히 저를 찾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거, 연기를 계속할 수 있음에요. 촬영장 가는 게 가장 행복하고요. 이러한 과정을 통해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아요. 열심히, 더 열심히 해야죠."

ebada@s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