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브수다] 우리가 몰랐던, '웃기는' 박해진

작성 : 2020-07-15 18:0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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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브수다] 우리가 몰랐던, '웃기는' 박해진
박해진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배우 박해진을 인터뷰로 만난 건 이번이 세 번째였다. 2016년 드라마 '치즈인더트랩', 2017년 '맨투맨'이 끝나고 이뤄졌던 인터뷰 이후 3년 만에 다시 박해진과 인터뷰 자리에 마주 앉았다. 그런데 느낌이 사뭇 달랐다. 3년의 시간이 흘렀는데, 어째 박해진은 더 어려진 느낌이었다.

단순히 외모의 어림이 아니었다. 예전의 박해진이 정갈한 파스텔 색이었다면, 지금의 박해진은 쨍한 원색 같은 느낌. 기존의 만남들에서 느꼈던 것보다 확실히 밝고 기분 좋은 에너지가 지금의 박해진에게서 강하게 묻어났다.

캐릭터에 자신을 투영시키는 배우들은 작품에 따라 그때그때 분위기가 달라지곤 한다. 밝은 캐릭터를 연기하면 밝게, 어두운 캐릭터를 맡으면 스스로도 어두워진다. 박해진은 최근 종영한 MBC 드라마 '꼰대인턴'에서 가열찬 역을 맡아 제대로 된 코믹 연기를 선보였다. 그런 탓에 박해진이 전보다 밝아진 느낌이라 여겼다. 아직 가열찬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그 높아진 텐션을 계속 유지하고 있는 거라고.

그런데 한 시간 남짓 대화를 나누며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지금 이게 박해진의 '본모습'이라는 걸. 겉에서 풍기는 말끔한 이미지대로 단정하고 세련된 모습도 분명 갖고 있지만, 그 속에는 장난기 많은 개구쟁이도, 혼잣말 잘하는 아재도, 다소 찌질하고 허당스러운 매력도 존재한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 우리는 아직, 박해진에 대해 모르는 게 많다.

박해진

▲ 가열찬과 비슷한 점 많아, 망가짐에 두려움 없다

'꼰대인턴'의 가열찬은 딱 박해진이었다. 겉으로는 완벽해 보이지만 알고 보면 소심하고 젊은 꼰대의 기질이 다분했던 가열찬. 하지만 그 누구보다 인간적이고 회사 동료들을 아꼈던 가열찬은 박해진 그 자체였다. 가열찬이 멋있게 폼을 잡든, 사정없이 망가지든, 상반된 두 상황이 자연스럽게 여겨졌던 건, 박해진의 연기에 설득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공감의 배경은 박해진과 가열찬의 높은 싱크로율이었다.

"기존에 맡았던 역할들이 제가 연기해야 하는 새 캐릭터를 만들어낸 거였다면, 가열찬은 원래의 제 것을 많이 갖다 썼어요. 제가 가열찬과 비슷한 점이 많아요. 나이가 들며 혼잣말도 많이 하고, 움직일 때마다 저도 모르게 소리를 내거나 말할 때 멜로디를 넣기도 하죠. 가열찬처럼 좀 찌질한 면들도 있고요.(웃음)"

박해진이 그동안 코믹적인 면을 꽁꽁 숨겨왔던 건 아니다. 의 이휘경이나 '맨투맨'의 김설우나, 젠틀한 남자 캐릭터들을 연기하면서도 조금씩 유머러스한 모습들을 녹여냈다. 하지만 '꼰대인턴'의 가열찬은 그 정도가 셌다. 앞선 캐릭터들이 '멋짐8:코믹2'이었다면, '꼰대인턴'의 가열찬은 '멋짐2:코믹8'의 비율로 뒤바뀌었다.

"망가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어요. 다만, 코믹을 예전부터 조금씩 하긴 했지만 이렇게 정면에 코믹을 보여드리는 건 처음이라, 걱정이 된 건 사실이에요. 다행히 방송을 본 시청자 분들이 좋아해 주셔서, 더 망가져도 되겠다, 더 코믹적으로 가도 되겠다, 하는 자신감이 생겼죠. 노력을 많이 했던 부분이, 제가 주체가 되어 웃기려 하거나 뭔가를 억지로 하기보단, 그 상황에 빠져 아무렇지 않은 듯 자기 할 일을 하는 모습에서 오는 재미를 드리고 싶었어요. 제가 주성치의 연기와 연출을 좋아하는데, 그런 스타일로요. 뻔뻔한 상황에서 오는 웃음, 그게 진짜 재미인 거 같아요."

박해진

특히 '꼰대인턴' 방송 초반 등장했던 인도 라면 CF 장면이 압권이었다. 박해진은 이 장면에서 인도 전통의상에 콧수염을 달고 춤까지 추며 이른바 '병맛 재미'를 선사했다. 파격적인 박해진의 모습은 '박해진이 이런 것까지 하다니'라는 놀라움을 안겼다.

"그 장면이 재밌긴 했나 봐요. 초반 방송분인데 아직도 많은 분들이 그 장면을 언급해 주시더라고요. 촬영에 최선을 다했어요. 완곡의 안무를 배우고 촬영만 12시간 가까이했는데, 방송에는 1분도 채 안 나가 아쉬워요. 그렇게까지 CG가 화려하게 들어갈 줄 몰랐어요.(웃음) 너무 재밌고 기가 막히게 CG가 잘 들어가서, 고생해 준 스태프들한테 고마워요."

▲ 필요한 꼰대도 있다... 난 그 경계 어디쯤

극 중 가열찬은 짠내 나는 인턴 시절을 경험하지만, 남다른 실력을 인정받아 초고속 승진으로 부장, 상무, 대표 자리에까지 올라 직원들을 아울렀다. 박해진은 회사 생활을 실제로 해 본 적은 없지만, 이번 드라마를 통해 회사 내 포지션들을 두루 경험했다.

"제 위에 누군가가 있거나, 반대로 제 아래에 누군가가 있는 경험을 간접 체험해봤는데,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어요. 특히 아랫사람한테 뭔가를 시키는 건 못 하겠더라고요. 높은 자리에 있다고 하고 싶은 말 다 하는 것도 아니고, 부하직원 무서워 일도 제대로 못 시키고. 부장의 위치에 있다고 해서 편하고 좋은 것만은 아니더라고요. 조금 결이 다르긴 하지만, 실제 제 성격이 좀 그래요. 제 일을 남에게 시키는 걸 잘 못 해요. 하다못해 방 정리까지도요. 결과가 제 성에 안 차기도 하고, 두 번 일 할 거 그냥 처음부터 제가 하고 말자는 주의예요."

부하직원들에게 칭송받는 '좋은 부장'이 되기 위해 자신의 진짜 모습을 숨기기에 바빴던 가열찬은 어느 순간부터 직원들에게 짜증 부리고 화를 내며 소심한 속내를 다 드러냈다. 쿨한 부장에서 '젊은 꼰대'가 되어버렸지만, 오히려 솔직하고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가열찬의 행동은 공감을 자아냈다.

"터뜨리니 시원하긴 하더라고요. 이 맛에 꼰대가 되는구나, 하는 공감대도 있었고 전체적으로 솔직해진 느낌이었어요. 연기도 그랬어요. 그동안 속은 그렇지 않지만 아닌 척하면서 연기한 작품들이 많았는데, 가열찬을 연기하면서는 표현이 조금 더 솔직해진 기분이었어요."

박해진

'꼰대인턴'은 지금 이 시대의 화두인 '꼰대'를 어렵지 않게 녹여냈다. 연륜과 경험을 내세우며 자신의 말이 맞다고 우기고, "나 때는 말이야"라 외치며 과거에 갇혀 사는 꼰대. 하지만 이 드라마는 '좋은' 꼰대가 있다는 걸 보여줬다. 연륜을 바탕으로 젊은이들의 새로운 문화를 흡수해 더 좋은 결과물을 낼 줄 아는 유연한 사고력의 좋은 꼰대를, 김응수가 연기한 이만식 캐릭터와 가열찬 역 박해진의 브로맨스를 통해 설득력 있게 그려냈다.

"꼰대라는 단어를 좋은 의미로 사용하지 않잖아요? 하지만 이번 드라마는 우리에게 '필요한 꼰대'에 대한 이야기였죠. 가열찬에게 힘들거나 위급한 일이 생기면, 어디선가 이만식이 나타나 도움을 줘요. 그렇게 '필요한 꼰대'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줬죠. 같이 연기한 선배님들도 하나같이 너무 좋으신 분들이었어요. 김응수 선배님은 물론, 손종학, 김기천, 고인범 선배님 등 모두가요. 선배님들과의 촬영에선 웃음이 끊이지 않았어요."

30대 후반에 연기자로 데뷔한 지 15년이나 된 박해진도 이제 '꼰대'라는 말에 공감될 수 있는 나이와 경력이다. 그는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할까.

"저는 꼰대의 경계에 있는 거 같아요. 속에서는 '우리 때는 그렇게 안 했어'라는 생각을 하긴 하는데, 겉으로 드러내진 않아요. 몇 년 전만 해도 밤샘 촬영에 집에 못 가는 일이 태반이었는데, 지금 촬영 환경은 정말 많이 좋아졌죠. 그렇다고 후배들에게 '우리 땐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지금 힘든 건 비교도 못해'라고 말하진 않죠. '세상 많이 좋아졌다' 생각만 할 뿐이에요. 또 후배들이 연기에 대해 물어오면 같이 상의할 순 있지만, 먼저 연기 조언을 해주려고 하지도 않아요. 선배가 해주는 '연기 조언'이라는 말 자체가 꼰대 같이 여겨질 수도 있으니까요. 서로 간의 프라이버시는 잘 지켜줘야 하는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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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것도 안 하고 쉬는 법 배우기

후배들 앞에서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 조심하면서도, 박해진은 함께 연기한 후배들과 격의 없이 지내며 좋은 팀워크를 유지했다. 가열찬 부장이 준수식품의 마케팅영업팀을 이끌었듯, 박해진은 '꼰대인턴' 배우들의 중심을 잡았다. 그에게선 후배들에 대한 애정이 뚝뚝 묻어났다.

"후배들이 다 정말 잘했어요. 오동근 역의 고건한은 저희가 '연기봇'이라 할 정도로 연기를 굉장히 잘하는 친구예요. 똑 부러지게 연기를 잘 해줘서, 오히려 제가 현장에서 의지를 많이 했어요. 김승진 역 홍승범은 정말 티 없이 맑고 천사 같은 친구예요. 그런 캐릭터를 처음 연기해봐 처음에는 고생했는데, 저한테 먼저 물어보고 답을 찾아가며 마지막까지 잘해줬죠. 이태리 역 한지은은 원래 너무 잘하는 배우인데, 솔직하게 연기하려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탁정은 역의 박아인은 너무 바보처럼 착해요. 주윤수 역의 노종현은 우리들 중 가장 어렸는데 애늙은이 같은 면이 있고요. 이제 드라마가 끝나 뿔뿔이 흩어지는데, 진짜 부장의 마음으로 모두가 걱정도 되고 기대가 되기도 해요. 다른 작품을 하게 되더라도 계속 응원하며 찾아볼 거 같아요."

가열찬의 브로맨스 상대는 한 때 상사였다가 '시니어 인턴'으로 자신 밑에 들어오는 이만식 역의 김응수였다. 가열찬과 이만식이 처음에는 으르렁거리다가 서로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힘을 모아 역경을 헤쳐나가는 모습은 재미와 감동을 동시에 선사했다. 박해진은 실제 김응수와도 소중한 친분을 쌓았다.

"김응수 선배는 곽철용 이미지가 강한데, 실제로는 꼰대와 거리가 먼 분이세요. 한참 선배신데도 꼰대 같은 말도 전혀 안 하시고, 허허 웃으며 '좋아 좋아'라는 말을 자주 하셨죠. 그래서 저희도 스스럼없이 살갑게 다가가게 되더라고요. 촬영 가면 어깨도 주물러 드리고, 배를 만지면서 '식사하셨냐' 물으며 장난도 치고. 그렇게 격의 없이 잘 지냈어요."

박해진

위로는 61년생 김응수부터 아래로는 93년생 노종현까지, 나이를 떠나 모두가 진짜 한 회사의 동료들처럼 끈끈하게 지내다 보니, 박해진은 '꼰대인턴' 마지막 촬영에서 눈물을 보였다.

"눈물이 왈칵 나더라고요. 이번 작품이 유독 그랬어요. 마지막 촬영 신을 특별할 거 없지만 모든 캐릭터들이 다 나올 수 있는 신으로 넣었어요. 그러다 보니 마지막 촬영할 땐 서로의 얼굴을 한 번 더 보고 집중하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나서 다 함께 수고했다고 인사를 하는데 울컥했어요."

박해진은 '꼰대인턴'이 종영되기도 전에 일찌감치 차기작을 정했다. 코믹한 모습을 벗고, 올 하반기 방영 예정인 드라마 '크라임 퍼즐'을 통해 사이코패스 범죄심리학자 한승민 캐릭터로 변신한다. 가열찬에서 한승민으로, 극과 극 변신이 반갑고 기대된다.

차기작 촬영까지 잠깐의 짬이 나는 상황. 박해진에게 쉴 때 뭘 할 거냐고 물었다.

"항상 쉴 때가 더 바빴어요. 관리도 받고 운동도 하고 뭔가를 배우기도 했죠. 계속 절 채우기에 바빴는데, 지금 와서 보면 그게 무슨 소용이 있나 싶어요. 저에게 주어진 꿀 같은 휴식기인데, 왜 그 시간마저 스스로를 혹사시키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지금은 자신을 조금 내려놓고 쉬는 법을 배워볼까 해요. 예전에는 하루 종일 집에 있으면서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이해되지 않았는데, 지금은 그런 시간도 필요하단 걸 느껴요. 그게 진짜 쉬는 거 아닐까요?"

[사진제공=마운틴무브먼트, 스튜디오HIM]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