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브수다] '브람스'의 보물찾기, 신인 배우 이지원

작성 : 2020-11-09 11: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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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브수다] '브람스'의 보물찾기, 신인 배우 이지원
이지원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내가 기억하는 신인 배우를 다른 작품에서 발견할 때 묘하게 느끼는 쾌감이 있다. 아직 신인이라 인지도는 낮지만, 연기가 인상적이라 기억하는 배우. 그런 배우를 우연히 다른 곳에서 찾으면 나만의 보물찾기에 성공한 느낌을 받는다.

최근 종영한 SBS 드라마 (이하 '브람스')에서 채송아(박은빈 분)와 문화재단 인턴 생활을 같이한 음대 동기 김해나 역을 연기한 배우 이지원은 그런 보물 같은 신인 배우다. 밉상 캐릭터인 김해나를 미워할 수 없게 연기해내는 낯선 얼굴, 그래서 눈길이 한 번 더 갔고, 자연스럽게 저 배우가 누구인가 궁금증이 솟아났다.

그리고 '이지원 보물찾기'가 시작됐다. 한 포털사이트 광고에서 JYP 박진영을 회사 후배로 받아들였다가 눈앞의 '남친짤'들에 당황스러워하는 여자 선배, 예능 '원하는 대로'에서 그룹 슈퍼엠 멤버들의 '그녀'로 등장해 로맨스 연기를 펼쳤던 여배우. "'브람스' 해나가 왜 거기서 나와"라며, 생각지 못한 곳에서 등장한 이지원에게 반가움을 느꼈다.

이지원은 이제 조금씩 자신의 존재를 알려가는 신인 배우다. 대중에게 다가가는 그 한 걸음 한 걸음이 소중하다. 그래서 이지원에게 '브람스'는 '첫사랑' 같은 작품이다. 고정 배역으로 1회부터 꾸준하게 출연한 첫 드라마이자, 시청자에게 배우 이지원의 존재를 처음 각인시킨 작품이라, 첫사랑 같은 설렘과 강렬한 잔상이 남았다.

실제 만나본 이지원은 '브람스' 김해나와는 느낌이 전혀 달랐다. 이기적이고 질투심이 많아 못되게 보였던 해나와 달리, 이지원은 선한 웃음과 밝은 성격으로 상대방을 기분 좋게 만드는 에너지를 지닌 인물이었다. 이래서, 드라마는 드라마로, 캐릭터는 캐릭터로만 봐야 한다니까.

이지원

▲ 여우짓 티 나던 해나, 귀엽지 않았나요?

"제 필모그래피에 하나하나 쌓인다는 게 기분이 좋아요. 내년, 내후년에는 더 많은 것들이 쌓이겠죠? 현장에서 배우는 것들이 정말 많아요. 차근차근 더 많은 경험을 해보고 싶어요. 스펀지처럼 쭉쭉 다 빨아들이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이지원은 신인답게 패기가 넘쳤다. 작품 하나, 경험 한 스푼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순수함도 지니고 있었다. '브람스'에서 하나의 의미 있는 배역으로 활약했다는 것에 기쁨도 컸다. 그녀의 '브람스' 합류는 오디션을 통해 얻은 결과였다.

"해나 역할로 오디션을 봤어요. 회식 자리에서 박준영을 '준영 오빠'라고 부르며 친한 척하는 장면을 연기할 때, 지켜보는 분들의 반응이 가장 좋았어요. 이 장면을 여러 배우들이 연기하는 걸 봤는데, 저처럼 하는 건 처음 봤다며, 이렇게 재미있는 장면인지 몰랐다고 하시더라고요. 해나의 행동이 눈에 보이는 여우짓, 남들이 보기에도 다 티가 나는 여우짓이라 생각하니 웃겼어요. 그렇게 분석하고 연기했더니, 다행히 반응이 좋았고, 제가 해나 역할을 할 수 있게 됐어요."

결국 그녀가 '브람스'의 김해나 역을 따낼 수 있었던 건, 캐릭터 분석이 확실했기 때문이다. 극 중 김해나는 부잣집 딸로 어릴 때부터 바이올린을 연주해 자연스럽게 음대까지 진학한 인물. 그런데 성격에 모난 구석이 있었다. 자신보다 실력이 떨어지는 나이 많은 동기 채송아를 무시하면서도 시기했고, 눈먼 질투심에 채송아와 관련된 소문을 교내에 퍼뜨리기도 했다. 이지원은 이런 김해나에게 측은함을 느끼고 있었다.

이지원

"전 해나가 귀엽다고 생각했어요. 진짜 똑똑한 애들은 치밀하지, 해나처럼 뻔히 어른들한테 보이는 여우짓은 안 해요. 해나는 모든 게 잘 갖춰진 환경에서 자랐고, 어머니가 시켜서 어릴 적부터 바이올린을 한 친구예요. 주어진 틀 안에서 바이올린을 해오던 해나는 자신이 이걸 진심으로 사랑하는지 이제야 고민을 시작한 인물이에요. 그 와중에 자신보다 못하다고 생각한 송아 언니가 대책 없이 바이올린을 사랑하고 열정적인 모습을 보며, 거기서 열등감과 질투심이 생긴 거죠. 그래서 송아를 괴롭히는데, 또 괴롭히면서도 자꾸 죄책감을 느껴요. 송아라는 인간을 미워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가진 열정에 대한 부러움의 질투였죠. 해나는 어리고 철이 없을 뿐이지, 나쁜 아이는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극 말미 해나는 체임버 일을 그만둔 송아를 진심으로 걱정했다. 구구절절 자신의 속마음을 내뱉지는 않지만, "전 제가 바이올린 좋아하는지 어쩐지도 모르겠는데, 언닌 좋아하잖아요. 바이올린"이라는 해나의 대사에서 그동안 이 캐릭터가 왜 미운 짓을 했는지, 어떤 고민을 해왔는지가 드러났다. 이지원의 설명대로, 해나가 그리 나쁜 인물은 아니었다는 게 느껴진 장면이었다.

"해나가 마지막에 참회해서 다행이죠.(웃음) 열등감에서 비롯된 자신의 행동에 대해 해나는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던 거예요. 송아한테 진짜 자기 마음을 고백하고, 결국 송아의 편에 서서 다행이라 생각해요."

▲ 원래 성격? 해나와는 정반대

그렇다면 실제 이지원의 성격은 어떨까.

"진짜 제 성격은 해나와 정반대예요. 해나는 정말 연기일 뿐이죠. 전 생각이 여유로워요. 좋은 게 좋은 거고, 흘러가는 대로 맡기는 편이에요. 제가 좋아하는 연기를 할 수 있다는 것에 그저 감사할 뿐이에요. 저와 아예 다른 해나를 연구하고 연기한 것이 재미있었고 특별한 경험이었어요. 현장에서 (박)은빈 언니가 '평소에 안 하는 거 하니 재미있지? 즐겨'라고 말해주곤 했는데, 진짜 재미있고 왠지 모를 카타르시스도 느꼈어요."

아역배우로 시작해 연기 경력이 25년이나 된 박은빈은 이제 갓 데뷔한 이지원에게 까마득한 선배다. 그렇다고 후배 기강을 잡는 무서운 선배는 아니었다. 선배로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면서도, 언니처럼 친근하게 다가와 준 고마운 존재였다.

"(박)은빈 언니한테 의지를 많이 했죠. 함께 연기하는 장면이 많았는데, 언니는 늘 제가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도록 열어주고 받아줬어요. 제가 긴 대사를 해야 해서 긴장할 때도 '너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해'라며 편히 연기할 수 있도록 배려해줬죠. 언니 덕에 위로가 많이 됐어요. 나이는 또래지만, 괜히 경력이 많은 게 아니구나, 싶었어요."

이지원

촬영장의 막내였던 이지원은 선배 배우들과 제작진의 배려 속에서 즐겁게 촬영에 임할 수 있었다. 촬영 환경도, 사람도, 너무 좋았던 '브람스'에서 이지원이 느낀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이었을까.

"전 바이올린을 태어나서 한 번도 잡아본 적이 없는데, 전공자로 보여야 한다는 게 어려웠어요. 1화에 나왔던 오케스트라 신에 조그맣지만 해나가 같이 연주를 해요. 그 장면을 위해 처음 바이올린을 잡아봤어요. 아무리 작게 나온다고 해도, 오케스트라인데 혼자 어색해서 튀면 안 되잖아요. 바이올린을 잡는 태라도 따라 해야 할 거 같아서, 레슨도 받고 영상도 찍으면서 공부 많이 했어요. 소리는 못 내더라도 외형적으로는 완벽하게 따라 하고 싶었거든요. 재미있는 경험이었죠. 제가 살면서 언제 또 바이올린을 잡아보겠어요. 그 장면 이후에 해나가 바이올린을 따로 연주하는 장면은 없어서 다행이었죠.(웃음)"

▲ 내게 '첫사랑' 같은 '브람스'…평생 가지고 갈 추억

이지원이 해나와 '브람스' 속 캐릭터들에게 더 공감했던 부분은, '꿈'에 대한 고민이었다. 어릴 때 무용을 했던 이지원은 13세 무렵부터 연기자를 꿈꿨고 예고를 거쳐 대학 연극영화학 전공까지 하며 이 계통의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학교에서 배우던 것과 실제 현장에서의 경험은 달랐고, '내 길이 이게 맞나' 하는 근본적인 고민을 품게 됐다.

"'브람스'에서 제가 특히 공감했던 건, 주인공들이 꿈에 대해 고민한다는 점이에요. 이 길이 맞나, 내가 이걸 진심으로 사랑하나, 나한테 재능은 있나, 이런 고민을 끊임없이 하죠. 저도 같은 고민을 했었어요. 학창 시절에 주어진 걸 열심히 하면서 살았는데, 졸업하고 현장에 나와보니 덩그러니 혼자 떨어진 기분이었어요. 어릴 때부터 배우를 꿈꿨고 한 번도 이 길을 의심해본 적이 없는데, '이걸 평생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처음 가져봤어요. 막막했죠. 그래서 잠깐 연기를 쉬고 생각할 시간을 가졌어요. 잠깐 멀어져 봐야 소중함을 안다고 하잖아요? 몇 개월 쉬어보니, 제가 연기를 얼마나 하고 싶어 하는지, 이 마음이 얼마나 간절한지 알겠더라고요. 지금은 마음을 다잡고 다시 열심히 달리는 중이에요. 그 쉬었던 기간이 저한텐 앞으로 나갈 수 있게 한 좋은 원동력이 된 거 같아요."

"연기를 다시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은 이지원은 오디션을 봤고 바로 합격했다. 그게 데뷔작 웹드라마 'WHY:당신이 연인에게 차인 진짜 이유'(2018)다. 이를 계기로 이지원은 지금의 소속사 미스틱스토리와 인연을 맺었고, 이후 '슬기로운 의사생활', '브람스'까지 출연이 이어졌다.

"너무 감사하죠. 울타리 안에서만 연기를 하다가 나와서 뭔가 반응들이 오고 하는 게 신기해요. 저 멀리, 오랫동안 상상만 하던 게 현실로 다가오니 행복하기도 하고 연기에 대한 책임감도 더 생겨요. 열심히 해서 오랫동안 믿고 볼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이지원

2020년은 이지원에게 특별한 해다. 처음 지상파 드라마에 출연해 얼굴을 알렸으니, 앞으로 배우 인생에 있어서도 평생 기억에 남을 2020년이다.

"신인인 제게 올해는 처음 경험해 본 것들이 많아 뜻깊어요. 드라마에 처음 출연해보고, 고정으로 1화부터 계속 나오는 역할도 해봤으니까요. 드라마 현장이라는 거 자체가 처음이라 어디에 서야 할지, 카메라를 어떻게 봐야 할지도 몰랐는데, 현장에서 배운 게 정말 많았어요. 제게는 진짜 '시작점'이라 할 수 있는 2020년이었어요. 여러모로 힘든 일도 있었지만, 가져가는 게 많은 한 해였던 거 같아요."

'브람스'는 마지막 회에서 여주인공 채송아의 입을 통해 '다시 상처받더라도 온 마음을 다해 다시 사랑하면서 앞으로 걸어 나간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이제 막 배우로서 첫발을 내디딘 이지원에게도 해당되는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앞으로 기쁜 일도, 반대로 상처받을 일도 많을 테지만, 그녀가 온 마음을 다해 계속 연기를 사랑할 수 있길, 조용히 바라본다.

"'브람스'는 제게 첫사랑 같은 드라마예요. 배운 것도 진짜 많았고, 평생 가지고 가야 할 추억과 경험이 생겼어요. 이걸 토대로 좋은 배우가 되고 싶어요. 올해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남은 시간 해나를 잘 보내주면서, 저도 또 오디션 열심히 봐서 또 다른 작품으로 금방 찾아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

[사진제공=미스틱스토리, 스틸컷]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